'매국노'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아들은 평생 조국 위해 헌신하는 과학자가 됐다

인사이트EBS '역사채널e'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해방 후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은 '암울' 그 자체였다. 새로운 종자 개발과 보급이 필수적이었으나 그럴만한 인재가 없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우장춘'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혼혈아였던 그는 해방 후에 자신이 편하게 살 수도 있었던 일본을 두고 한국에 가기로 한다.


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조선인 강제수용소에 들어갈 정도로 한국행을 택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사실 그에게는 그 열정의 원동력이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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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이 6살 때,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다. 이후 어려운 삶을 살아온 우장춘은 열심히 공부해 동경제국대학 부설 농학실과에 입학한다.


대학에 입학한 우장춘은 어느 날 한 한국인 유학생 보게 된다. 


김철수라는 이 학생은 강단에서 친일 연설을 하는 한국인을 보고는 그에게 달려나가 멱살을 잡았고, 우장춘은 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우장춘은 김철수와 수시로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김철수는 우장춘에게 "아버지의 매국에 속죄하려면 조선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네가 배운 바로 봉사해야 한다"라며 그가 한국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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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면서 동경제국대학 농업 박사 학위를 딴 우장춘은 '종의 합성'이론으로 전 세계 유전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에서 앞날이 창창한 그였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에서는 우장춘을 꼭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컸지만, 매국노의 아들을 데리고 오면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반면 일본은 우장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수를 동원하며 급기야 우장춘을 감옥에 가두려는 꼼수까지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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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장춘의 결심이 강했다. 


한국에 가기로 한 우장춘은 일본에서 자기를 놓아주려 하지 않자 자신의 발로 조선인 불법체류자들이 있던 강제수용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한국 정부에서 보내준 한국인 신분증을 제시하며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행 송환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는 한국 정부에서 알아서 쓰라고 준 돈마저 모두 종자를 사는 데 탕진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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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장춘은 매국노의 자식이라는 오명이 있었음에도 6.25 전쟁과 자금 부족 등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부족했던 식량 증대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한국 농업 발전에 힘써오던 그는 59년 전인 1959년 오늘(10일) 한국에 온 지 9년 만에 앓고 있던 병이 악화해 숨을 거두고 만다.


죽기 3일 전 '문화 포상'을 받은 그는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는구먼"이라며 오열했다.


그 눈물에는 매국노의 아들로서 평생 아비의 죄를 갚으며 살아야 했던 자신과 가난한 조국으로부터 버려져야 했던 조선인으로서의 애환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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