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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 학력' 편견 딛고 맨손으로 회사 세워 '연매출 4000억' 신화 만든 제약회장

광동제약 창업주 故 최수부 회장은 회사가 부도났다는 말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9억원 규모의 주신 10만주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동제약


[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비타500', '쌍화탕', '광동옥수수수염차'로 국민에게 폭넓은 신뢰와 사랑을 받은 제약회사가 있다. 바로 광동제약이다.


오는 24일은 광동제약 창업주 고(故) 최수부 회장이 타계한지 5주기가 되는 날이다.


故 최수부 회장은 중퇴 학력 편견을 이겨내고 제약사 영업 사원에서 시작해 맨손으로 광동제약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살아생전 그는 한방의약품 제조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건강음료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동제약


'광동우황청심원', '광동쌍화탕' 등 한방의약품을 대표 제품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그의 사업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98년 4월 외환위기로 나라가 신음하던 시절 故 최수부 회장은 자금담당 직원에게 연락을 받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행이 대출해줄 수 없어 광동제약이 1차 부도를 맞았기 때문.


故 최수부 회장은 당시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우황청심원' 재료인 사향을 담보로 최종 부도를 막는데 성공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동제약


그러나 원료 공급업체는 현금을 줘야만 물건을 내어주겠다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노동조합을 포함한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해 상여금을 전액 반납하기로 했다.


직원들은 또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일 더 하기, 연장 수당 반납하기 캠페인도 전개했다.


이에 보답으로 故 최수부 회장은 보유하던 주식 중 10만주를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 당시 시가로 9억원 규모였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동제약


광동제약 창업 후 최대 위기를 오너와 직원들이 함께 극복한 것이다.


故 최수부 회장은 2000년 외환위기 이후 직원들이 자진 반납했던 상여금을 전액 지급한 후 "노사는 결코 갑을 관계가 아니다"는 말을 남기며 노사화합 경영을 이어왔다.


이후 故 최수부 회장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마시는 비타민C '비타500'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2000년대 초반 비타민C는 오로지 알약 형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동제약


하지만 까다로운 입맛을 보유했던 故 최수부 회장은 6~7개월 동안 직원들이 개발한 시제품을 돌려보냈다.


단순히 맛이 없었기 때문. 마침내 50번째 시제품을 맛본 故 최수부 회장은 해당 음료를 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국내에 새로운 비타민 건강 음료 시장이 열렸다. '비타500'은 원료 자체에 약품 성분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식품으로 분류된다.


폭 넓은 유통망 덕분에 '비타500'은 약국 외 대형 마트에도 유통돼 한순간에 히트 상품이 됐다.


인사이트YouTube 'Kwangdong'


그 결과 광동제약은 2005년 4월 박카스를 매출 107억원으로 누르고 월 건강음료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故 최수부 회장은 광동제약을 연매출 4000억원대의 제약 유통기업으로 일궈냈다.


故 최수부 회장은 '비타500'을 비롯한 다수의 건강 웰빙 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제약기업의 위상 제고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살아생전 "회사를 경영하며 돈을 얻었다면 그건 조금 얻은 것이다. 명예를 얻었다면 많이 얻은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얻었다면 모든 걸 다 얻은 것과 같다"고 말했던 故 최수부 회장.


품질은 물론 정직과 신뢰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완벽을 추구했던 故 최수부 회장의 남다른 경영 철학은 그가 떠난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광동제약 직원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