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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환자 목숨 살리려 신호위반을 한 구급대원입니다"

구급차 사고 발생 시 이유를 불문하고 119대원에게 면책권을 주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사이트

Facebook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달려가던 구급차가 빨간불 앞에 멈춰섰다.


운전대를 잡은 119대원은 고민했다. 뒤에는 심정지가 온 90대 응급환자가 타고 있었다. 벌써 30분이나 흘렀다. 빨리 응급실에 도착한다면 할머니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원까지는 단 3분. 119대원은 굳은 마음을 먹고 바뀌지 않는 신호를 바라보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교차로를 지나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뒤집어졌다.


창문 밖으로 튕겨 나간 동료는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엉금엉금 구급차로 기어갔다. 그 간절함이 무색하게, 환자는 끝내 숨을 거뒀다.


이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119대원들에게 떨어진 소식 하나. "경찰조사 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대단한 훈장을 바란 게 아니었는데. 경찰서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광주 북부소방서


최근 광주에서 벌어진 구급차 충돌사고로 전 국민이 들썩였다. 사고가 나면 구급대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대한민국의 법이 화두로 떠올랐다.


현행법상 구급차, 소방차, 혈액수송차 등은 '긴급자동차'로 분류돼 신호나 속도를 위반해도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구급차 운전자 과실이 밝혀질 경우 모든 책임을 119대원이 떠안아야 한다.


빨리 구하라고 등 떠밀면서 지원은 하나도 안 해주는 셈. 실제로 최근 3년간 구급차 사고는 740여건이 발생했고, 119대원들은 처벌을 받아야 했다.


피해자가 가벼운 경상을 입거나 상황에 따라 정상 참작 될 때도 있지만, 이마저도 운전자가 얼마나 위급했는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구급대원은 "사고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처벌은 안 받더라도 사비로 합의금을 물어야 하거나 인사 등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주저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소방관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미국의 경우 구급차와 부딪히면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일반 차량에 100% 책임을 묻는다.


구급대원들이 오직 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심지어 구급차 운전자에게 교통신호를 바꿀 수 있는 리모컨을 주는 나라도 있다.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로 밀어버리고 창문을 깨트려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일에도 선진국의 소방관들은 거침이 없다. 뒷일을 책임질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


이러한 법체계는 국민 생명이 최우선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구조활동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사이렌 소리 시끄럽다며 소방청에 민원넣고, 불끄러 온 소방관에게 신발 신고 들어왔다고 소리치는 우리네의 모습이 더욱 부끄럽기만 하다.


인사이트twitter 'Mark Garfinkel'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소방관의 이 간절함이 어느덧 죄가 된 나라.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미 2016년에 긴급자동차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본회의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감히 구급차 운전자에게 면책권을 줘야 한다.


만약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면 배상은 소방관 개인이 아닌 나라에서 하도록 법체계를 바꿔야 이들이 마음껏 구조에 임할 수 있다.


소방관이 국가를 대신해 국민 생명을 지키고 있다면, 그 소방관은 국가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인사이트뉴스1


그날, 90대 환자를 덧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광주 119 구급대원들은 치료가 채 끝나기 전에 소방서로 복귀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구급차에 몸을 싣는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소방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