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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때 아빠 여의고 소년 가장된 뒤 오직 '축구' 열정으로 버텼던 소년 '캉테'

캉요미로 불리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최고의 스타가 된 은골로 캉테의 어린시절을 소개한다.

인사이트

GettyimagesKorea


[인사이트] 장형인 기자 = "지구의 70%는 물로 덮여있고, 30%는 캉테가 커버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첼시의 수비형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를 두고 영국 언론들이 하는 말이다.


지구의 30%를 누빌 정도로 캉테의 경기 중 활동력이 많다는 뜻이다. 


뛰어난 체력과 실력으로 전 세계 언론의 칭찬을 받으며 최근에는 '캉요미'라는 별명까지 얻은 캉테.


언제나 그의 삶은 지금처럼 화려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어린시절이 마냥 꽃길은 아니었다. 


인사이트lifebogger


은골로 캉테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는 토고와 말리에서 왔다.


프랑스 이주민 신분이었던 캉테는 뤼에유말메종 지역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탓에 캉테는 일찍부터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캉테는 파리 각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해 돈을 벌었다. 


돈이 될 만한 쓰레기를 줍기 위해 파리 전역을 발로 걸었다고 한다.


11살 무렵에는 갑작스럽게 아빠가 돌아가시며 캉테는 밑에 딸린 동생 8명을 챙겨야 하는 소년가장이 됐다. 


어린 소년은 그때부터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졌다.


인사이트lifebogger


캉테는 쓰레기 수거 일로 가족들의 끼니를 때울 만큼은 벌었다. 하지만 가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때부터 캉테는 축구에 관심을 가졌다. 


길에서 축구 실력을 키웠던 그는 이후 유소년 축구팀에서 활약했다.


여기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지난 2014년 프랑스 1부리그에 들어간 그는 2015-16시즌 만년 하위팀 레스터시티를 133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 집안을 챙겨야 한다는 어린 소년의 책임감과 축구의 열정이 지금의 캉테를 만든 것이다. 


캉테가 지금의 세계적인 축구스타가 되기까지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사실 프랑스의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인사이트Instagram 'football_plaisir_fc'


당시 프랑스 내에서는 이민자 2세들에게도 동등한 교육 환경을 제공했다.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 시스템에서 평등하게 경쟁을 펼친 덕분에 캉테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은골로 캉테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그의 소년 시절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를 영국 데일리메일, 더선 등에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168cm 작은 키 때문에 매번 입단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던 캉테.


모든 시련을 이겨낸 캉테는 현재 440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받고 첼시에서 맹활약 중이다. 


거기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결승까지 오게 한 주요 선수로 꼽힌다. 


다가오는 16일 크로아티아와 프랑스의 대결에서 캉테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