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마르의 브라질과 4강 놓고 혈전 벌이는 벨기에를 '애정'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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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내일(한국 시간) 새벽 3시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전 '벨기에vs브라질'의 경기가 열린다.


벨기에는 G조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랐고, 16강전에서는 일본에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투쟁심 넘치는 공격력을 선보이며 3대2 역전승을 거뒀다.


이들의 역전승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이 북한에 0대3으로 뒤지다가 5대3으로 역전승을 거둔 이후 52년 만의 두 골 차 역전승이었다.


후반 48분에 터진 나세르 샤들리의 역전골은 '역습'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를 본 축구 팬들은 승리를 향한 그들의 투쟁에 짜릿함마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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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팬들은 벨기에의 역전승에 크게 감동했다. 한국 축구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벨기에가 '6·25전쟁'에 병력을 파병해 한국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몸 바쳤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벨기에는 연 병력 3,500명 규모를 파병했으며, 무려 106명이 전사했다.


벨기에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12시간을 날아야 도착하는 한국 땅에, 생면부지의 동양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은 한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무엇보다 벨기에 상원의원과 국방부 장관을 지내면서 '호의호식'할 수 있었던 '앙리 모르 드 믈랑'은 직을 모두 내려놓고 '소령'으로 임관해 전쟁에 참전했다.


인사이트앙리 모르 드 믈랑 소령 / 국가보훈처


당시 벨기에에는 "'상원의원'은 참전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이 있었지만, 일부러 법률까지 개정해 참전했다. 그것도 자신의 과거 특기를 이용해 '통신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1951년 2월 임진강 북쪽 금굴산 진지를 방어하며 중공군의 진출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무작정 밀고 오는 중공군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다.


국가 최고 수준의 권력과 명성을 가졌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전쟁에 참여한 모습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적인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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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회고록을 펴고 "한국은 벨기에처럼 세계적인 열강에 둘러싸여 있어 그들이 느낄 아픔에 많이 공감이 갔다"라면서 "그렇기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돕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쟁은 끔찍한 일이지만, 인간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 한 가운데서 내 옆의 전우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위대한 창조물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위해 몸 바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앙리 모르 드 믈랑 소령은 전 세계인의 찬사 속에서 1992년 천국으로 떠났다.


한편 벨기에는 황제 레오폴드 2세가 나라를 통치하던 1800년대 후반 및 1900년대 초반 '벨기에령 콩고'의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아직 제대로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비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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