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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비 500만원만 남겨라"…전 재산 '2억 6천' 기부하고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전 재산을 기부하고 지난해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조명됐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이소현 기자 = 1926년, 강원도 산골짜기 평창에서 한 소녀가 태어났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 시달리던 이때, 소녀는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살에 어머니마저 잃었다.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 머물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소녀는 심부름을 나갔다가 중국 지린성의 훈춘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1943년, 17살의 어린 나이에 위안소에 끌려간 소녀가 느낀 수치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사이트영화 '귀향'


3년간 머물렀던 위안소에서 '자살 기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7차례나 했지만, 가혹한 세상은 그에게 '죽을 자유'조차 주지 않았다. 살기 위해 탈출도 감행했다.


소녀는 탈출하던 중 일제 군인에게 들켜 위안소로 되돌아왔고, 심하게 뺨을 맞아 고막이 터졌다.


일제가 패망한 뒤 위안소에서 빠져나온 소녀는 38일을 걷고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안의 반대가 너무 심해 이길 수 없던 탓이다.


혼자 남은 소녀는 딸을 낳았지만, 아이는 아비와 어미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가 그랬듯 그를 홀로 남기고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사이트영화 '눈길'


3년간의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지만 평생을 외로워야 했던 소녀. 바로 故 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다.


1998년 나눔의 집에 온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국내와 일본을 돌며 증언에 나선 할머니는 지난 2007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 '아이캔스피크'에서 배우 나문희의 연설로 화제 됐던 바로 그 장면이 김 할머니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인사이트아름다운재단


인권운동가로 살리라 다짐한 김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 출연자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할머니는 수중에 있던 5,500만원 중 장례비 500만원을 제외한 전 재산을 기부했다.


"가난하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배울 기회만이라도 갖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0대 때 부모를 잃고 야학에서 8개월간 배운 것이 전부였던 할머니기에 누구보다 어려운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았을 터.


전 재산을 내놓으면서도 액수가 적다며 부끄러워했던 할머니다.


인사이트아름다운재단


기부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6년 뒤 할머니는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 지원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5천만원을 더 기부했다.


이후에도 나눔의 집에 1천만원, 퇴촌 성당에 1억 5천만원을 기부하며 생애 2억 6천만원이라는 큰돈을 기부한 할머니는 지난해 7월 91세의 나이에 별이 됐다.


인사이트Facebook '정대협 Justice for the 'Comfort Women''


약 1년 뒤인 지난 1일, 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향년 10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억원'을 단칼에 거절하며 사과만 바랐던 할머니지만 결국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운명했다.


이제 피해 생존자는 단 27분 만이 남았다. 남은 피해자분들이라도 일본 정부에 살아생전 진정한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