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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평짜리 무허가 단칸방서 생활고 시달리다 숨진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만주 벌판을 누비던 독립운동가는 광복 후 철거민촌 단칸방에서 고단한 삶을 연명하다 눈을 감았다.

인사이트故 이우석 선생 / KBS 1TV '불멸의 전쟁'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24년 전 오늘인 1994년 6월 26일, 만주에서 활약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 마지막 생존자인 이우석 선생이 쓸쓸히 눈을 감았다.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등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가 온몸과 온 마음을 던져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중 한 사람인 이우석 선생은 189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부동산 중계 일을 하던 이우석 선생의 아버지는 조선인들이 독립자금을 위해 헐값으로 판 집들을 일본인에게 되팔았다.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이우석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 항일의 뜻을 품고 압록강을 건넜다.


인사이트북로군정서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이후 무장독립운동단체 북로군정서에 들어가 무기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고 분대장으로서 청산리 전투 등에 참전했다.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만주에서 꾸준히 독립운동을 벌였다.


광복 후 1947년 희망을 품고 고국 땅으로 돌아온 이우석 선생은 독립운동을 펼칠 때보다 더욱 힘겨운 상황을 맞닥뜨린다. 생활고였다.


이우석 선생은 행상을 다니고 막노동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거처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철거민촌에 위치한 8평짜리 무허가 집이었다.


인사이트이우석 선생이 남긴 친필수기 / KBS 1TV '불멸의 전쟁' 


고단한 삶을 연명하던 상황에서도 선생은 오랫동안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한일협정 찬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서류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나라를 다시 팔아먹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1990년에서야 다른 독립운동가의 주선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이우석 선생은 이후 1994년 6월 26일, 99세의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고은의 시 중에 '이우석'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시는 노래한다.


"한번도 빛나는 영예 받아 본 적 없다. 서울의 한 빈민굴 구석방 호호 추위에 곱은 손 비비며 살아 있었다. 이것이 진짜 애국자이고 독립운동가였다 싸운 것 몇천배로 받아먹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