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양반들은 반려동물로 '아기 호랑이'를 키웠다

인사이트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인사이트] 김민주 기자 =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은 마음의 위안을 주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 말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의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보다.


조선 시대 예술 작품을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이 키운 다양한 반려동물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암의 '모견도', 김홍도의 '모구 양자도'에는 모두 강아지가 등장한다.


귀티 나는 강아지의 편안한 모습을 묘사한 이 그림들은 풍류를 즐기는 양반들이 집안에서 키우던 강아지임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사대부 집안의 생활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는 마당을 뛰노는 두루미와 사슴이 묘사돼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반려동물은 이뿐만 아니었다. 조금 더 특별한 반려동물을 키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아기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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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한 전시장에는 반려동물로 살았던 호랑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엽서가 등장했다.


집 앞마당에 엎드려 있는 아기 호랑이 두 마리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엽서의 정식 명칭은 '길림 장백산의 호랑이 회엽서'다.


하단에는 '오랫동안 한국민가에서 사육해 온 호랑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엽서가 발견된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당 엽서 속 호랑이의 모습은 조선 시대 백두산 지역 민가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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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조들은 어떻게 호랑이를 키우게 됐던 것일까.


모든 동물을 아꼈던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들도 매우 사랑했고, 반려동물로까지 키우게 된 것이라 짐작된다.


지금과 달리 조선 시대에는 우리나라 전역에 호랑이가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친숙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와 밀접하게 생활했던 호랑이는 일제 강점기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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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5∼1942년 일본은 해로운 동물을 잡는다는 해수 구제사업의 명목으로 국내의 호랑이, 늑대, 여우 등 엄청난 수의 동물들을 학살했다.


사실 일본은 명목 뒤에 또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 상징적인 동물이었던 호랑이를 죽여 민족성을 훼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제의 횡포에 호랑이는 점점 사라졌고,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호랑이는 완전히 멸종됐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는 멸종위기 동물로 실제로 보기조차 힘든 호랑이와 사람의 관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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