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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례식 치른 아들이 '눈물'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던 아들은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인사이트MBC '화려한 유혹'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던 아들은 문득, 어린 시절 봤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렸다.


연세대생 A씨는 아버지를 여의고 조문객이 뜸한 새벽, 아버지가 좋아했는 노래를 틀고 영정사진 앞에 앉았다.


피어오르는 향 사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액자 속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깊은 눈을 마주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어느덧 성인이 돼있었다. 빛나는 청춘을 살았고, 진심 어린 사랑도 해봤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고초도 겪었고, 삶의 두려움도 알기에 '죽음' 역시 잘 알고 있던 그였다.


그럼에도 어쩐지 아버지의 죽음은 낯설기만 했다.


A씨는 장례를 치르는 그날까지도 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영정사진 앞 촛불이 꺼질세라 지키고 앉아있던 A씨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아버지와 싸웠던, 즐거웠던 모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났다. 그 모든 끝은 '그리움' 이었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A씨는 '왜 출근하는 아버지와 포옹 한 번 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책망했다.


마음을 터놓고 맥주 한 잔을 나누지 않던 사이. 후회스러운 기억을 되뇌던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한참의 기억 끝에 그는 어린 시절의 어느 밤에 다다랐다.


때는 20년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깊은 밤까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 홀로 앉아있었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자다 깬 어린 A씨가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아버지는 말없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위는 고요했고 아버지가 틀어놓은, 할아버지가 유독 즐겨듣던 노래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생생해진 기억에 A씨는 자신과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A씨는 당시 아버지가 떠난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슴에 슬픔을 묻고 계셨다는 걸 이제 안다.


인사이트gettyimagesBank


천천히 이별을 받아들이던 아버지처럼, A씨 역시 아버지와의 헤어짐을 조금씩 수용하고 있었다.


그는 글의 말미에 "아버지, 그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나요.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지만 이젠 그 답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슴속에 묻고 계셨다는 것을"이라고 고백했다.


5일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해당 사연의 주인공 A씨는 글의 끝에 "습한 초여름 그날을 회상하며,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멀리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에 접어든 아버지를 향한 그의 편지 끝에는 마침표가 없었다.


맺어지지 않은 끝처럼, 아마도 A씨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영원토록 함께할 것이다.


이하 전문


아버지, 그때가 또렷이 기억납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상주실에서 자다 새벽에 잠깐 깬 저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죽음이란 개념이 아직 와닿지 않을만큼 어렸던 저는 문을 열고 아버지께 갔습니다.

아빠 무슨 생각해?

아버지는 말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고 그저 살짝 웃고 마셨습니다.

아버지께선 저를 무릎에 앉히고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노래를 잔잔히 틀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밤이 새도록 영정사진 앞에서 촛불을 지키셨습니다.

아버지 그땐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어렸던 저는 벌써 성인이 되었습니다.

빛나는 청춘에 살았고, 진심어린 사랑도 해보았습니다.

누구보다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 삶의 두려움도 느껴봤습니다.

저는 제가 죽음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그 날까지도 저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조문객이 뜸한 새벽 저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노래를 틀고 영정사진 앞에 앉았습니다.

졸리고 힘들었지만 혹시나 촛불이 꺼질까 긴 밤을 지켰습니다.

그리곤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 원망, 미안함, 그리움.

왜 출근하시는 길 사랑한다 포옹 한번 하지 못했을까.

마음 터놓고 그 쉬운 맥주 한잔 같이 하지 못했을까.

기나긴 후회와 눈물 끝에 저는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그 날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그땐 무슨 생각을 하고계셨나요.

더이상 물어볼 수도 없지만 이젠 그 답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슴속에 묻고 계셨다는 것을

그러면서 천천히, 힘들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계셨다는 것을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습한 초여름 그날을 회상하며, 사랑하는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