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번' 만난 여성을 죽을 때까지 짝사랑한 남성이 지은 시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 피천득 '인연 中' -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많은 사람들은 인연을 기다린다. 나에게 인연이 언제 찾아올까. 어디서 나타날까.


그러면서 항상 제자리에 있다. 움직일 줄도 모른다. 마치 나무처럼. 바람에 나뭇잎만 나부껴도 겁을 낸다.


그런 사람들에게 작가 피천득은 말했다. 현명한 사람은 인연을 살릴 줄 안다고.


과연 그에게 '인연'이란 어떤 의미일까.


17살의 봄. 피천득에게 그때는 언제나 수채화처럼 젖어있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공기, 냄새, 바람의 결마저 생생하다고 했다.


1910년 5월 29일 한성부 종로에서 태어난 피천득은 17살 무렵 일본에서 머물게 됐다.


일본 도쿄의 미우라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피천득의 '인연'인 아사코를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이었다.


미우라 부부의 딸인 아사코는 세이신 여학원을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린 아사코는 피천득을 친오빠처럼 잘 따랐고, 피천득도 여동생처럼 잘 챙겨줬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이후 피천득이 미우라 부부의 집을 떠날 때, 친남매 같았던 둘은 이별을 몹시 아쉬워했다.


피천득은 아사코 또래의 여자아이를 볼 때마다 아사코를 떠올렸다.


세월이 흘러 피천득은 다시 일본을 방문해 미우라 부부의 집을 찾았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초등학생이던 아사코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피천득은 아사코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함께 산책을 즐기며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 중 아사코는 강의실에 우산을 두고 왔다고 말하며 서둘러 우산을 챙겨왔다. 빛깔이 고운 연두색 우산이었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였다. 피천득은 미우라 부부의 집으로 향해 아사코를 찾았다.


아사코는 더이상 그 집에 없었다.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고 한다.


피천득은 너무 아쉬웠다. 미우라 부부에게 부탁해 꼭 한 번만 만나고 싶다고 사정했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결국, 피천득은 아사코의 집으로 찾아갔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아사코를 만난 피천득은 깜짝 놀랐다. 아사코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모습이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후 피천득은 아사코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피천득은 세 번의 만남을 끝으로 아사코를 추억의 서랍장 안에 고이 넣었다.


세 번의 만남, 그리고 한 번의 이별. 아사코는 피천득의 인생과 가치관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아사코를 떠올리며 피천득은 수필 '인연'을 집필했다.


그리고 11년 전 오늘인 2007년 5월 25일 영면했다. '인연'을 뒤로 한 채.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동주'


작가 피천득은 수필 '인연'의 마지막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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