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목숨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했던 푸른 눈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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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기현 기자 = "내가 죽더라도 한국은 지켜야 한다"


1950년 7월,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한반도에 미국이 자랑하는 전쟁 영웅이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빠른 기동력을 앞세운 전술로 독일군에게 연패를 안긴 월튼 워커 중장.


일반적으로 한국 전쟁의 영웅으로는 맥아더 장군이 꼽힌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에는 워커 중장의 결단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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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중장은 한국전쟁 당시 급파된 미8군의 초대 사령관이었다.


한국 땅을 밟고 상황을 확인한 그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지하며 "부산으로 밀리면 끝장"이라는 평을 내놨다.


이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라며 "결코 후퇴란 없다. 오직 사느냐 죽느냐만 있을 뿐"이라고 결사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낙동강 방어선 사수는 당시 미국 정부조차 반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은 워커 중장은 결국 낙동강 사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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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라인은 이후 그의 이름을 따 '워커라인'으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워커라인 덕분에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큰 전공을 세웠지만 워커 장군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


1950년 12월 23일, 워커 장군은 함께 참전 중이던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국군의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한국을 적화통일의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의 죽음이라기에는 너무도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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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연고도 없었던 나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결사 항전을 외친 워커 장군. 그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한편 워커 중장을 기억하던 한국과 미국의 노병들은 2009년 사재를 털어 그가 최후를 맞은 도봉역 인근에 표지석을 세웠다.


서울의 대표적인 특급호텔인 워커힐호텔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호텔이다.


황기현 기자 kihyu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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