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한 조선인에게 식민지배 필요하다"는 망언에 두 남성이 암살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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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을사늑약은 미개한 조선인을 위해 필요한 조치다. 조선인은 독립할 자격도 없는 무지한 민족"


친일파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의 발언이었다.


1904년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에 임명된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를 역설하는 적극적인 친일파였다.


일본 외무성과 한국통감부의 밀령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미국으로 떠났던 스티븐스는 또 다시 망언을 퍼부었다.


그는 미국의 각 언론에 "조선인들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환영한다. 일본은 조선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성명서를 보냈다.


당시 미국에 있던 교민들은 분노했다. 그중 두 청년은 암살을 계획했다.


인사이트San Francisco Chronicle


전명운 의사, 그리고 장인환 의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두 의사는 재미교포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친일파 미국인의 망언을 전해 듣고 도저히 분노를 감출 수 없었던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


사실 두 의사는 서로를 몰랐다. 암살을 계획하는지도 몰랐다. 다만 친일파를 처단하려는 의지,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움직였다.


결국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었던 전명운 의사는 안타깝게도 권총이 불발하고 말았다. 이에 권총으로 스티븐스의 머리를 내리치며 육탄전을 벌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암살'


이때 장인환 의사가 등장해 방아쇠를 세 번 당겼다.


첫발은 빗나가 전명운 의사의 어깨에 맞았으나 제2, 3발은 스티븐스의 등과 허리에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저격당한 이후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수술 도중 사망했다. 두 의사의 친일파 암살 계획은 성공했다.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는 법원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았다. 전명운 의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장인환 의사는 2급 살인죄로 징역 25년형을 받았다.


이후 교민들은 힘을 모아 장인환 의사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고, 10년 만인 1919년 1월 특사로 풀려나게 됐다.


비극적인 사실은 장인환 의사가 1930년 투신자살해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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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장인환 의사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까지 영향을 미친 장인환 의사, 그리고 전명운 의사.


조국을 위해 인생을 던진 두 의사의 생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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