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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겟 아웃'으로 재조명된 '인종차별단체'의 흑인 대학살 사건 4

과거 KKK단의 악명 높은 '흑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정리해봤다.

인사이트(좌) 영화 '겟 아웃', (우) centralmaine.com


[인사이트] 김연진 기자 = 최근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겟 아웃'은 인종차별 문제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평받고 있다.


이에 미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단체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이른바 KKK단의 잔혹한 행태가 재조명되고 있다.


KKK단은 "백인은 신에게 선택받은 인종이다"라는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며 단지 피부색을 이유로 범죄를 일삼았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흑인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불안감을 느낀 백인들은 단체를 결성해 흑인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자행한 것이다.


과거 KKK단의 악명 높은 '흑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정리해봤다.


현재 KKK단은 지지 세력을 모으지 못해 사실상 해체된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침잠의 방'처럼 잠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존 윌리엄스 사건


인사이트chicagotribune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흑인 민권운동지도자로 활동했던 짐 윌리엄스(Jim Williams)는 흑인들을 모집해 민병대를 조직했고, 곧바로 KKK단의 주요 표적이 됐다.


지난 1871년 3월 6일 밤 KKK단은 짐의 집에 폭탄을 투척한 후 부상을 당해 정신을 잃은 그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이후 KKK단은 짐을 집단 구타했으며 목에 밧줄을 묶어 나무에 매달았다.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발버둥 쳤지만 이를 지켜보던 KKK단원 중 한 명이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잘랐고, 결국 짐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2. 해리 무어 폭사 사건


인사이트gettyimagesKorea


지난 1951년 12월 25일. 평화롭기만 하던 가정집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지는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폭탄 테러의 피해자는 해리 무어(Harry T. Moore)로, 지역에서 흑인학교를 운영하며 민권운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누군가 침대 밑에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며 현장에서 즉사했다.


당시 FBI는 수사에 총력을 다했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해 수사 종결을 선언하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 2005년 FBI는 미제사건 전담반을 결성해 해당 사건을 재수사했고, 수사 결과 KKK단이 계획한 암살 사건임이 밝혀졌다.


3. 그린즈버러 참사


인사이트washingtontimes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Greensboro) 지역은 흑인민권운동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지난 1960년 그린즈버러의 한 식당에서 "흑인은 입장이 불가하다"고 말하며 공공연히 차별하자 주변 지역에 살던 흑인 주민들이 모여 비폭력시위를 이어갔다.


이후 평화로운 집회는 19년 동안 지속됐고, KKK단은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러던 중 지난 1979년 KKK단원들은 집회 현장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고, 이 참사로 인해 흑인 5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고 말았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지역 경찰관들은 "시위자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고 말하며 총기 난사를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4. 털사 대학살


인사이트CNN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Tulsa) 지역에는 1900년대 초 석유가 발견되고 큰 유전이 개발되며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났다.


흑인 중에서도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러면서 점차 흑인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자 백인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던 중 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백인들은 연일 시위를 이어가며 '흑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흑인 민권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법정 앞에 모여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갔고, 이에 맞서 KKK단원들과 백인들도 시위를 벌이며 대치했다.


시위 중 KKK단과 합세한 백인들은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무고한 흑인들을 폭행하거나 총기를 난사해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는 잔혹한 '학살'을 자행했다.


김연진 기자 jin@insight.co.kr